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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한일서 2: 13 - 17 " 세상적 욕망의 정체"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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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한일서 2장 3절에서 17절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신앙 증거와 함께, 우리가 경계해야 할 

'세상적 욕망의 정체'를 아주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.

​사도 요한은 이 본문을 통해 말로만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키는 삶

(행함)이 진짜 신앙이라고 강조한 뒤, 본격적으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며 마주하는 '

상'과 '욕망'에 대해 경고합니다.

​이 말씀을 바탕으로 성경이 말하는 세상적 욕망의 정체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.


​1. 세상적 욕망의 3가지 정체 (요한일서 2:16)

요한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

라며, 그 욕망의 정체를 3가지로 압축합니다.


  • 육신의 정욕 (The lust of the flesh): 육체적인 쾌락, 감각적인 만족, 즉각적인 본능을 
  • 채우려는 욕망입니다. 내 몸이 편하고 즐거운 것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우는 마음을 뜻한다.
  • 안목의 정욕 (The lust of the eyes): 눈으로 보는 것에서 오는 탐욕입니다. 남의 겉모습, 
  • 화려한 소유, 사치스러운 것들을 보며 부러워하고,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
  • 하려는 시각적 탐닉입니다.
  • 이생의 자랑 (The pride of life): 이 세상 삶에서 얻은 지위, 명예, 부, 권력을 자랑하고 과시
  • 하려는 교만입니다. "내가 이만큼 이뤄냈다"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.

2. 왜 세상적 욕망을 경계해야 하는가?

첫째,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.

​"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" (요한일서 2:15)


​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. 세상적 욕망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,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 

순수한 사랑과 신뢰는 밀려나게 됩니다. 하나님과 세상은 양다리를 걸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.


​둘째, 그것들은 모두 '유한하고 일시적'이기 때문입니다.

​"이 세상도,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" 

(요한일서 2:17)


​세상적 욕망이 주는 만족은 화려해 보이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. 안개가 걷히듯 순식간에 

사라질 허무한 것들입니다. 반면, 그 욕망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한 삶은 영원한 가치를 

지닙니다.


​3. 욕망의 정체를 파악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(요한일서 2:3~6)

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 한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? 요한은 본문 앞부분에서 이미 그 해답

을 제시했습니다.

  • 말씀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'지키는 삶' (3~4절): 욕망의 정체를 파악했다면, 내 삶의 
  • 기준을 세상의 유행이 아닌 하나님의 계명에 두어야 합니다.
  • 주님 안에 거하며 '주님이 행하신 대로 행하는 삶' (6절): 예수님은 육신의 정욕, 안목의 정욕, 
  • 이생의 자랑을 모두 이겨내신 분입니다. 우리가 주님과 깊이 연합할 때, 세상의 유혹을 분별
  • 하고 이겨낼 힘을 얻게 됩니다.

오늘 묵상하시는 말씀을 통해, 혹시 내 삶 속에 은밀하게 파고든 육신의 정욕, 안목의 정욕, 이생의 

자랑은 없는지 돌아보고,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뜻을 붙잡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.



  ~~~  ~~~  ~~~  ~~~




엘렌 화이트(Ellen G. White)는 요한일서 2장 3~17절, 특히 세상적 욕망의 3가지 요소

(육신의 정욕, 안목의 정욕, 이생의 자랑)**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경고에 대해 매우 실제

적이고 날카로운 주석과 권면을 남겼습니다.

​그녀의 글에서 이 본문과 관련해 강조된 핵심 주석들을 정리해 드립니다.

  

​1. 그리스도의 광야 시험과 세 가지 욕망의 관계

엘렌 화이트는 요한일서 2장 16절이 말하는 세 가지 정욕을 '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세 가지 

시험'과 직접 연결하여 설명합니다.

  • 육신의 정욕 ➔ 식욕의 시험: 인류가 가장 먼저 무너진 지점이자 육체적 본능을 제어하는 
  • 시험이었다.
  • 안목의 정욕 ➔ 사단의 권세와 영광을 보여준 시험: 세상의 화려함과 시각적인 소유욕을 
  • 자극하는 시험이었다.
  • 이생의 자랑 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신성 모독적 시험: 하나님의 보호를 시험
  • 하고 자신을 과시하려는 교만의 시험이었다.

​"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엄습할 가장 거대한 유혹들을 광야에서 맞닥뜨리셨습니다. 

그분은 단신으로 교활하고 미묘한 원수를 만나 승리하셨습니다. 첫 번째 큰 시험은 

식욕(육신의 정욕)에 관한 것이었고, 두 번째는 자만(이생의 자랑), 세 번째는 세상 

사랑(안목의 정욕)에 관한 것이었습니다... 그리스도의 모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. 

그분은 사단을 이기셨고, 우리 역시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 보여주셨습니다."


​2. 세상과의 타협은 '정체성'을 잃어버리게 만든다

​화이트는 말세의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가 '세상과의 동화(Conformity to the

 world)'라고 경고합니다. 요한일서 2장 15절("세상을 사랑하지 말라")을 인용하며, 세상적 

원칙을 받아들이는 것은 영적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만든다고 보았습니다.

​"세상과의 타협은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... 

주님의 천사는 이 문제를 내게 상징으로 보여주었습니다. 도둑이 몰래 살금살금 다가와 

아주 조금씩, 그러나 확실하게 하나님의 사업의 정체성을 훔쳐 가듯, 사단은 우리 형제

들을 세상의 방침을 따르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."


​그녀는 교회가 세상과 너무 밀접하게 연합하여 "누가 그리스도인이고 누가 세상 사람인지 구별

할 수 없는 상태"가 되는 것이 사단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지적했습니다.


​3.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마음의 올무

화이트는 '교만'과 '세상 사랑'이 신앙생활에서 은혜를 경험하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 

가장 큰 방해물이라고 말합니다.

​"교만과 세상 사랑은 영성과 은혜 안에서의 성장을 가로막는 거대한 올무입니다. 이 

세상은 그리스도인의 하늘이 아니라, 하늘에서 죄 없는 천사들과 연합할 수 있도록 

준비하는 하나님의 작업장일 뿐입니다... 우리가 경건에 이르도록 마음을 훈련하지 

않기 때문에 영적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그토록 힘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."


​재물, 집, 토지, 명예에 마음을 빼앗겨 뇌와 뼈와 근육의 모든 에너지를 세상 소유를 늘리는 

데만 쏟아붓는 것은 요한일서가 말하는 '세상적 욕망'에 취해 영적으로 마비된 상태라는 것

이 그녀의 경고입니다.

  

​4. 지나가는 것(유한함)과 영원한 것의 대조

​요한일서 2장 17절("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")에 대해 화이트는 세상의 쾌락에 취해 

영원한 삶을 팔아버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워 했습니다.

​"세상의 것들은 빠르게 시들고 죽어갑니다. 머지않아 욕망 그 자체도 쇠하고 멈출 것

입니다. 그러나 거룩한 애정은 사라져 버릴 정욕과 같지 않습니다. 하나님의 사랑은 

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... 세상과 그 죄악이 지나갈 때 죄를 사랑하는 자도 함께 사라

지겠지만,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영원한 의의 원칙에 마음을 두는 자는 영원히 거

할 것입니다."


​요약하자면

​엘렌 화이트의 권면 속에서 요한일서 2장 3~17절은 단순한 도덕적 훈계가 아닙니다. 그것은 

"예수님이 광야에서 승리하신 그 방법(말씀)으로 우리도 매일의 삶 속에서 육신과 안목과 이생

의 유혹을 거절하고, 세상과 구별된 영원한 하늘 시민으로 살아가라"는 강력한 영적 전투의 메

시지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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Jewooklee님의 댓글

no_profile Jewookle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

​"주전부리"

1. 단어의 유래
​'주전부리'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흥미로운 설이 있습니다.

​입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설: 입을 뜻하는 옛말이나 '입을 놀린다'
는 의미의 '주전'에, '부리(입)'가 더해져 "입을 가만히 두지 않고
자꾸 무언가를 입에서 돌린다"는 행위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다.

​돈을 주물럭거린다는 설: 주머니 속의 돈(동전)을 주무르며 군것
질거리를 산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.

​2. '군것질'과의 차이점
​'군것질'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, 뉘앙스에서 약간의 차이가
있습니다.
​군것질: 조금 더 '부차적이고 영양가 없는 군음식을 먹는 행위'에 초
점이 맞춰져 있다면,
​주전부리: 입이 심심할 때 재미나 취미 삼아 입을 달래주는 음식 그
자체를 친근하게 부르는 느낌이 강합니다.

​3. 전통적인 한국의 주전부리
​과거 한국 조상들이 즐기던 대표적인 주전부리로는 다음과 같은
것들이 있습니다.

​겨울철: 군고구마, 군밤, 찐감자, 곶감, 귤
​사계절: 누룽지 긁은 것, 볶은 콩이나 은행, 한과, 엿, 떡

​오늘날에는 젤리, 초콜릿, 감자칩, 탕후루 같은 현대적인 간식들도
모두 넓은 의미에서 "오늘 주전부리 좀 먹었더니 배부르네" 하는
식으로 편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.


저도 이제  나이를  먹어가면서 생겨난  식습관 중에 하나가
주전부리  입니다.  아침,  저녁  밥을  잘 먹었는데,  그래도
뭔가 더  먹고 싶을 때  대체로  과일을  한 두갤  먹는데, 그

래도  허전할 때  겨울엔  옥수수 뻥튀기 를  사다  놓고 먹었다.
그러다,  요  얼마 전에는  비스코티 라는  이테리  과자와 코코
넛 롤 을 코스코에서 사다 놓고  한 두개씩 꺼내 먹고는 했다.

그러다 요  근자에는  찰 옥수수 를 몇 자루 꺾어서  잘 쪄 놓으
면,  이게  구수한게  얼마나  좋은지요?  이제 좀  있으면 머스크
다인  포도가  나올테고, 그 다음엔  알 밤이 쏟아 질게고, 대추가

익으면 차를  끓여내고,  가을엔  고구마를 캐 두었다가  겨우내
잘 구워내면  구스한게 아주  훌륭한  주전부리가  되기도 합니다.
거기다가  아침,  저녁으로  글  한 편씩을 올려 놓으면, 오며 가며

마음이 넉넉한  사람들끼리  주고 받는  인사가 되기도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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